왕 하나가 두 나라를 다스리는 동군연합(同君聯合) 개념
'동군연합(同君聯合)이란 서로 독립된 2개 이상의 국가가 동일한 군주를 모시는 정치 형태를 말한다.'
선 요약
1. 유럽에는 동군연합이라는 개념이 있다.
2.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고려-만주심양 동군연합)
3. 나폴레옹 등장으로 민족국가 개념이 싹트면서 동군연합 풍습은 사라짐
1. 역사 속 동군연합
a. 크누드 대왕의 북해제국(잉글랜드-덴마트-노르웨이-스웨덴)
b.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연합왕국
c. 대영제국-하노버 연합왕국
d. 카스티야-아라곤 왕국
e. 기타 동군연합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프랑스-나바라 왕국
2. 동군연합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원인
첫 번째 원인 : 게르만족의 전통 중 하나인 분할상속제의 영향
두 번째 원인 : 국가를 창건자가 아닌 왕의 소유물로 보는 유럽의 관점
3. 고려의 동군연합
4. 동군연합 풍습의 쇠퇴
1. 역사 속 동군연합
a. 크누드 대왕의 북해제국(잉글랜드-덴마트-노르웨이-스웨덴)
크누드 대왕은 덴마트 스벤 왕의 아들로 부친을 따라 잉글랜드 점령전에 참가함.
이후, 스벤 왕이 죽자 잉글랜드의 왕이 됨.
그런데 때마침 그의 형인 덴마크의 하랄 왕이 후계자 없이 사망함.
결국 크누드는 덴마크의 왕위까지 이어받게 됨.
그 뒤로 몇 번의 정복전쟁 끝에 노르웨이, 스웨덴과 스코틀랜드의 일부를 점령해서 거대한 제국을 세움.
이를 흔히 북해제국 또는 스칸디나비아 제국(帝國)이라 부르지만, 사실 크누드는 잉글랜드의 왕이자 덴마크의 왕이었고 노르웨이의 왕이며 스웨덴의 왕이었음.
b.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연합왕국
현대의 영국은 스코틀랜드-잉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의 네 나라로 이루어져 있음.
그런데, 과거에는 이 네 나라가 각각 다른 나라였음(시대에 따라 약간씩 변했음).
1603년, 잉글랜드 여왕 겸 아일랜드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가 후계자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자,
영국 의회는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1세를 잉글랜드+아일랜드의 왕으로 추대함. 그리하여 스코틀랜드+잉글랜드+아일랜드의 왕이 탄생함.
초창기에는 이 나라들이 바로 합쳐진 건 아니었음. 내부 불만이 워낙 심했기 때문.
애초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서로 앙숙관계였으므로......
지금도 서로 사이가 안 좋음....ㄷㄷㄷ
결국, 시간이 지나고 몇 번의 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UK, 즉 연합왕국이 탄생을 하게 됨.
c. 대영제국-하노버 연합왕국
1701년에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왕이었던 윌리엄 3세도 후계자가 없었음. (여기에서 온갖 고민이 시작됨)
그래서 처제인 앤과 그녀의 아이(처조카)를 왕위 후계자로 정했으나, 안타깝게도 처조카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남.
그리하여 제임스라는 영국 국교회가 아닌 가톨릭 교도였던 자가 왕위계승권자로 떠오름.
이 사실이 다른 여러 이유와 맞물리면서, 윌리엄 3세는 카톨릭 교도인 제임스의 즉위를 막기 위해 '영국 국교회가 아닌 사람은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라고 왕위 계승 법을 개정해버림.
윌리엄 3세가 왕위 계승 법을 바꾸자, 새로이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그 루드비히가 왕위계승권자로 떠오르게 됨.
후에 그는 조지 1세로 영국 왕에 즉위하고, 이때부터를 하노버 왕조라고 부르게 됨
(하노버 왕조의 출발이 내각책임제의 시초라고 볼 수 있음. 조지 1세는 영어를 못해서 하원 의원들에게 정치에 관한 대부분의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
따라서, 위 지도의 초록색인 조지 1세가 종전에 갖고 있던 하노버 땅은 당연히 조지 1세가 계속 통치하게 됨.
쉽게 말해서 조지 1세는 영국의 왕이자 하노버의 선제후가 됨.
두 나라가 서로 다른 나라다 보니, 상속법에서도 차이가 있었음.
영국의 경우는 여자의 왕위 상속을 인정했지만, 독일은 인정하지 않았음.
그래서 후에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했을 때 두 나라는 서로 갈라지게 됨.
d. 카스티야-아라곤 왕국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아라곤의 페르난도가 결혼하면서 카스티야-아라곤 연합이 추진됨.
나중에 페르난도가 왕위에 즉위하면서 동군연합이 이루어짐.
그런데, 이 두 나라 역시 동군연합이 되었을 뿐 바로 합쳐진 것은 아니었음.
다만 거의 한 나라처럼 통치되었고 후에 에스파냐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합쳐지게 됨.
에스파냐는 뒤이어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 5세를 왕으로 맞이함.
카를 5세도 합스부르크 왕가답게 결혼 및 상속으로 많은 영토를 손에 넣음.
그런데, 아라곤과 카스티야는 왕실의 결합으로 한 나라가 되었으나, 그 땅에 살던 국민들의 의사가 반영된 것은 아니었음.
그런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옛 아라곤 왕국 일부 지역(카탈루냐)은 오랫동안 독립을 외치고 있음.
e. 기타 동군연합
위 나라들의 경우 말고도 유럽에는 다양한 동군연합이 존재했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프랑스-나바라 왕국 등
2. 동군연합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원인
첫 번째 원인 : 게르만족의 전통 중 하나인 분할상속제의 영향
로마가 망한 뒤, 게르만 족이 대이동 하면서 많은 왕국들을 세움.
게르만 족은 전통적으로 분할상속이 원칙. (장자상속제 없었음)
초기에는 이런 전통을 충실히 지켰고 그 때문에 자식들에게 왕국을 나눠서 주는 일도 많았음.
그런데, 땅을 나눠서 받게 되면 각 후손들이 받을 수 있는 몫이 적어지면서 점점 나라의 힘이 약해지게 되므로,
후손들은 친척들의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수없이 반목하게 됨.
분할상속제가 계속되면 될수록 나중에는 받을 수 있는 땅이 매우 적어지게 됨.
그렇기 때문에 힘을 합치기 위해 가문 간의 정략결혼이 많아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족보가 복잡해져서 동군연합 같은 개념이 생겨남.
두 번째 원인 : 국가를 창건자가 아닌 왕의 소유물로 보는 유럽의 관점
유럽에서는 국가를 철저하게 소유물로 보았음.
그렇기 때문에 어느 귀족이라도 왕과 혈연적인 관계에 있다면 왕위 계승권을 갖게 됨.
유럽 왕가들은 복잡한 혼인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A나라의 귀족이 B나라의 왕과 친척관계일 수도 있었고 그것을 빌미로 왕위를 이어받게 되면서 자연스레 동군연합이라는 것이 생겨남.
그에 비해 동양의 경우는 국가를 왕이 아닌 창건자의 소유로 보았음.
그러므로, 오직 창건자와 그 후손만이 국가를 소유하고 왕이 될 수 있었음.
왕조가 바뀌면 나라 이름이 바뀌는 이유가 그런 이유에 연유함.
그에 비해 유럽은 왕조는 바뀌어도 나라 이름은 바뀌지 않았음.
3. 고려의 동군연합
동군연합이 동양에서는 드문 개념이긴 하지만, 동양에서도 동군연합과 비슷한 비슷한 사례가 가끔 있었음.
고려의 충선왕이 원나라 무종과 인종, 두 명의 황제를 옹립한 공으로 고려왕 겸 심양왕에 봉해짐.
후에 충선왕의 개혁이 실패로 끝나자 충선왕은 실각한 뒤, 고려의 왕위는 장자에게, 심양의 왕위는 조카에게 물려주었음
엄밀히 말하면 위의 사례도 동군연합의 일종임.
그러나, 고려 말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조선을 건국했을 때, 그의 아들 이방원은 이성계가 고려왕으로부터 왕위를 양위받았으므로, 자신이 심양왕에 오를 정통성이 있음을 알았지만, 명과의 관계 개선 및 대외적인 왕위 인정을 위해 심양왕의 권리를 포기하게 됨. (조선은 스스로 만주 심양의 권리를 포기했음)
4. 동군연합 풍습의 쇠퇴
동군연합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점차 사라지게 됨.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나폴레옹이 그 혁명정신과 민족주의를 들고 전쟁을 벌이게 되고, 그것이 전 유럽에 퍼져나가면서 더 이상 왕이 자기 마음대로 영토를 주고받는 행위를 할 수 없게 됨.
이로써 민족국가 개념이 싹트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