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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대 말부터 1795년까지의 폴란드-러시아 관계

 요약
1. 폴란드는 러시아 내란에 개입해서 모스크바를 2년간 점령한  있음.
2. 폴란드는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유럽과 오스트리아를 지켜   있음.
3. 폴란드 왕권 다툼 때문에 폴란드가 러시아 보호령이 되었고 귀족들이 알아서 나라를 외세에 바쳐 나라가 사라짐

목차
1. 폴란드스웨덴과도 앙숙이 
2. 러시아지역 왕조
   a. 류리크 왕조 (Rurik dynasty)
   b. 로마노프 왕조 (Romanov Dynasty)
3. 대홍수(Potop): 폴란드 몰락의 대전쟁
4. 폴란드의 오스만 투르크 격퇴
5.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1733~1738)
   1 폴란드 분할 (1772)
   2 폴란드 분할 (1793)
   3 폴란드 분할 (1795)

1. 폴란드스웨덴과도 앙숙이 
폴란드 왕된지 7 후인 1599 시기스문트는 스웨덴 왕에서 폐위되어 폴란드-리투아니아 왕으로 남게 .
그래서 시기스문트는 폴란드군을 동원해서 스웨덴  자리를 되찾으려 했으나...진압당함.
그래서 이후 폴란드는 모스크바 뿐만 아니라 스웨덴과도 적대국이 .

2. 러시아지역 왕조

a. 류리크 왕조 (Rurik dynasty)
모스크바 대공국이 3 로마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서이반 4(이반 뇌제) 모스크바 대공국을 루스 차르 국(Царство Русское)으로 개명했다.

차르는 황제를 뜻함.
그동안 유럽에 왕은 많았지만 황제라고 칭 나라는 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신성 로마 제국밖에 없었음
차르(Царь단어  어원은 로마 제정이 시작하게 만든 카이사르 이름.
카이사르는 후에 캐사르로 발음이 변하고 이게 슬라브어에서 구개음화가 일어나서  채사르로 발음이 변했음.
실제로 폴란드어에서도 채사르와 비슷한 발음인 Cezar 쓰고러시아어에서도 Цезарь로 여기서 ез가 탈락되어 Царь가  .

러시아에서 이반 4세의 아들 표도르 2세는 후사가 없이 죽었는데,
표도르 2 동생인 드미트리는 어릴 적에 요절함.
그런데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드미트리가 살아있다는 음모론이 퍼지기 시작했고이에 자기가 드미트리라고 주장하는 자가 등장함.

가짜 드미트리는 러시아 입장에서 사기꾼에다가 매국노였음.
표도르 2세가 죽자 표도르의 장인인 보리스 고두노프가 황제로 선출되었는데,
드미트리가 고두노프를 쫓아내고 집권하기 위해 영토 분쟁이 있던 폴란드-리투아니아로 망명했기 때문.

가짜 드미트리 1세는 폴란드 귀족들을 속여폴란드 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했음.
보리스 고두노프가 살아있을 때는 러시아가 우세했는데고두노프가 병사하자 드미트리 군대가 러시아군을 격파하고 드미트리가 황제가 .

가짜 드미트리는 폴란드군을 이용해서 황제가 되었기 때문에 대중들로부터 폴란드 앞잡이라고 욕먹었으며폴란드 여자랑 결혼까지 그리고 가짜 드미트리는 무능했음.
그래서 러시아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가짜 드미트리는 도주하다가 향년 25세의 나이로 근위병들한테 참살됨.
치세는 1년이었음.

가짜 드미트리가 참살된 다음 이반 4세의  친척인 바실리 4세가 즉위함

그런데 다음 해에 또다른 가짜가 나타남 자는 사실 자기가 이반 4세의 아들 드미트리이며 1  황궁에서 무사히 도망쳐 살아남았다고 주장함.
그러고는  다시 반란을 일으켰지만 이번에는 스웨덴군한테 진압당함.

스웨덴군이 가짜 드미트리를 진압하니까,

스웨덴과 적대국이었던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두 번째 가짜 드미트리를 지원함

폴란드의 지원을 받은 가짜 드미트리 2세는 바실리 4세를 체포했고 바실리 4세는 폴란드 바르샤바(Warszawa) 끌려가서 폴란드 바르샤바 감옥에 끌려가서 사망함.

그런데 가짜 드미트리 2세도 부하의 배신으로 사망..

가짜 드미트리 2세가 죽자 폴란드-리투아니아 왕이었던 시기스문트(Zygmunt III) 아들 브와디스와프(Władysław IV) 러시아 차르로 선출됨.
근데 브와디스와프가 차르가 되려면 폴란드 종교인 가톨릭에서 러시아 종교인 정교회로 개종해야 되는데, 개종을 거부하는 바람에 차르 자리를 얻질 못함.


대신폴란드군은 모스크바를 2년간 강점하게 .

b. 로마노프 왕조 (Romanov Dynasty)
하지만 러시아 차르 집안의 외척이었던 로마노프  귀족들은 폴란드의 지배를 받아들일  없었음.
그래서 의용군을 모집해서  폴란드 반란을 일으키고 러시아를 해방시킴.
결국 2 후인 1612년에 폴란드군은 모스크바를 버리고 퇴각함.

그리고 외척 로마노프 가의 미하일 로마노프가 차르에 선출됨이로써 류리크 왕조는 막을 내림.

하지만폴란드가 모스크바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전쟁은 계속되었고러시아는 서부 영토 일부를 폴란드에 넘겨주고 전쟁을 패배로 끝남.

 시기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폴란드프러시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남에스토니아서우크라이나중앙 우크라이나벨라루스 전체러시아 서부 스몰렌스크 지방까지 진출하였음.
중부 유럽과 동유럽을 제패한 .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공용어는 폴란드어라틴어였지만 인구의 절반은 루테니아어( 벨라루스어우크라이나어) 사용했음그만큼 영토가 넓었음.


3. 대홍수(Potop): 폴란드 몰락의 대전쟁

한편폴란드-러시아  전쟁이 끝난 지 30 되는 해인 1648우크라이나 코사크 귀족들은 폴란드 귀족(Szlachta)들의 지배에 항거하는 반란을 일으킴.
이번 반란에는 또다른 피지배 민족이었던 타타르족까지 끌어들임타타르족 종교는 이슬람교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자 폴란드군 7만 명이 우크라이나 폭도 14만 명을 진압함.
그러자 러시아가 같은 동슬라브족을 구원하겠다며 1654년에 우크라이나벨라루스서러시아를 침공

1618년에 브란덴부르크( 베를린 지방선제후가 폴란드의 조공국인 프러시아 공작을 겸임하게 .
 기회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프러시아 독립을 위해 폴란드 공격에 동참.

그리고 폴란드와 적대 관계였던 스웨덴까지 러시아 편으로 참전.

이게 바로 대홍수(Potop)라는 폴란드 몰락의 대전쟁이었음.
대홍수로 인해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인구의 1/3 잃고 동부 영토 상당수를 잃게 .

남색이 브란덴부르크 연두색이 스웨덴청록색이 러시아.
노란색이 폴란드 남은 영토.......
 

실레지아랑 갈리치아 빼고는 전부 스웨덴이랑 러시아가 빼앗음.
스웨덴은 폴란드프러시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를 빼앗았고,
바르샤바와 크라쿠프까지 스웨덴한테 함락당하게 .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벨라루스스몰렌스크 지방을 빼앗았음.

그리고 우크라이나벨라루스에 살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박해당함.

폴란드가 스웨덴한테 이렇게 털린 이유는 브란덴부르크와 러시아의 참전도 있었지만 폴란드 왕권이 약했기 때문.
폴란드는 왕을 선거로 뽑았기 때문에 귀족들의 입김이 너무 강했음.
그래서 전쟁이 나더라도 귀족들의 동의가 없으면 군대를  보냈음.
스웨덴이 쳐들어왔을  많은 귀족들은스웨덴 편에 붙었음.
귀족들은 스스로 항복했고결국 바르샤바(Warszawa) 크라쿠프(Kraków) 스웨덴에게 함락됨.

비록 폴란드-리투아니아의   2(Jan II) 바르샤바(Warszawa)에서 우크라이나 갈리치아 지방의 르부프(Lwów) 피신했지만폴란드의 스테판 차르니에츠키(Stefan Czarniecki) 의용군을 이끌고 스웨덴의 침략에 맞섬.

결국 1년만인 1657, 폴란드 땅에서 스웨덴 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함.

하지만 러시아와 브란덴부르크와는 아직 전쟁 중이었음.
일단브란덴부르크와 화친을 맺어서 브란덴부르크의 영지였던 프로이센은  이상 폴란드-리투아니아에 조공을 바치지 않게 결국 프로이센은 1657 독립함.

그리고 1667년에 러시아와 폴란드-리투아니아는 길고 길었던 전쟁을 끝냄.
다만 조건이 있었는데,
지금의 키예프(Kijów) 있는 중앙 우크라이나 지역을 러시아에 넘겼고
스몰렌스크(Smole
ńsk) 지방도 러시아에 넘겼음.
이로써 러시아는 키예프 루시 고토 회복을 조금이나마   있었음.

비록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스웨덴과 러시아에게 양분 당하는 일은 피했지만,
전체 인구의 1/3 죽고 프로이센중앙우크라이나스몰렌스크를 상실했음.

폴란드-리투아니아는 1667년을 계기로 동유럽의 강대국에서 밀려났음.

이후스웨덴은 러시아에게 대북방 전쟁에서 패배해서 스웨덴도 강대국에서 밀려남.

한편 신성로마제국의 일개 지방에 지나지 않았던 브란덴부르크는 새로운 강국으로 떠올랐음.
영지였던 프로이센이 독립했기 때문.
 이후 브란덴부르크는 프로이센이라는 이름으로 역사 속에 등장.

4. 폴란드의 오스만 투르크 격퇴
1684년에는 오스만 투르크가 남유럽에서 점점 북진하더니 오스트리아 (Wien)까지 올라와 포위하게 .

폴란드는 같은 가톨릭이었던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를 지원하기 위해 원군 8만 명을 보냄.
오스만 투르크 군이  성벽을 부수면서 쳐들어 가는 시점에 폴란드 윙드 훗사르가 쏟아져 나와 오스만 군을 격퇴함.

이번 전투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왕 얀 3(Jan III) 직접 참전해서 대승을 거두게 됨.

폴란드, 오스트리아 연합군은 15000명 가량 죽었는데 오스만 투르크는 60000명이 죽어버림.

폴란드 덕분에 오스만 투르크는  이상 북상하지 못했고,
폴란드는 기독교 세계를 수호했다는 명성을 얻게 되어기독교 세계의 방파제가 .

그리고 오스만 투르크 몰락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음.

하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도 같이 몰락을 하기 시작했음.

1697년에 승전을 이끈  3(Jan III) 심장마비로 고인이 되고,

작센 출신 아우구스트 2(August II)  폴란드 왕으로 선출됨

아우구스트는 오스만 투르크에 대한 공격을 멈췄음.
그리고 리보니아( 라트비아에스토니아) 정복하기 위해 원정을 계획했지만,
친스웨덴 폴란드 귀족들이 그를 폐위시킴.
그리고 스타니스와프 1(Stanisław I) 왕이 .

폐위된 아우구스트2세는 러시아 표트르 1세한테 가서 원군을 요청함.
러시아는 군대를 끌고 와서 스타니스와프를 축출하고 아우구스트를 다시 권좌에 앉혔음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의 입김을 받게 .

1733년에 아우구스트 2세가 죽자 친스웨덴 파였던 스타니스와프 1(Stanisław I) 다시 왕이 .

그러자, 이에 반발한 친러파와 친스웨덴파의 갈등이 일어났고,
아우구스트 2세의 장남 아우구스트 3(August III)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폴란드를 침공함.


5.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1733~1738)
그래서 폴란드-리투아니아 땅에서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1733~1738) 일어나게 .
스타니스와프가 친스웨덴이었지만 스웨덴 국력은 이미 러시아한테 추월당해 버렸고,
스타니스와프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에 기대게 되었음.
그래서 폴란드 땅에서 프랑스(+스페인) VS 러시아(+오스트리아전쟁이 일어났음.
결국 스타니스와프 1세는  한번 왕에서 쫓겨나고 아우구스트 2 아들인 아우구스트 3세가 왕이 .
그래도 스타니스와프 1세는 프랑스로 가서 로렌 공작까지 하면서  먹고  살았음.  

결국폴란드는 러시아의 보호 상태에 놓이게 .

폴란드가 러시아 보호령이 되자 이에 반발한 브란덴부르크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폴란드를 뜯어먹으려 하기 시작함.

 

1 폴란드 분할 (1772)
전쟁이 끝난지 30 되는 해인 1768년에는 우크라이나에서 다시 한번 반란이 발생함.
어차피 폴란드는 러시아 속국이었기 때문에 러시아가 영토를 뜯어가도 크게 상관없었음.
그래서 1 폴란드 분할이 일어났음
(1772)

 

1차 분할 후:

프로이센은 독일인이 많이 사는 포메라니아를 가져가고,
오스트리아는 갈리치아(서쪽은 폴란드인동쪽은 우크라이나인),
러시아는 동북 변방 지대(동슬라브족 대부분) 가져감.

2 폴란드 분할 (1793)
1 분할로 영토 상당수(211,000 km² 한반도 크기 정도) 450만명의 인구를 잃은 폴란드는 1791유럽에서 두 번째의 성문헌법(1등은 로마) 만드는 개혁을 실시했으나이번에도 씨발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킴.


결국 1793 9 23 귀족 의회(Sejm) 열렸고귀족 의회에서 2 폴란드 분할에 대한 찬반 표결이 이루어짐

 결과폴란드 2 분할이 폴란드 귀족들의 손으로 이루어짐.  

대폴란드 지방(폴란드인 다수) 프로이센에 넘어가고,
동벨라루스우크라이나가(동슬라브족 다수러시아에 넘어갔음.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에서 1789년에 일어난 혁명에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 앙투아네트 구출하러 원군을 보내느라 폴란드 분할에 참여 못했음

 

대폴란드와 크레시 절반인 307000 km ²을 상실함.

결국외세에 빌붙은 폴란드 귀족들을 몰아내고자 폴란드 국민들(폴란드 국민 90% 투표권이 없었음) 폭동을 일으켰으나 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 군에게 진압당함

3 폴란드 분할 (1795)
그리고, 1795년에 폴란드 3 분할이 일어났고 폴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짐.
외세의 침략이라기 보다는 폴란드 왕권 다툼과 귀족들이 나라를 망하게  .

 

바르샤바(Warszawa), 비아위스토크(Białystok), 수바우키(Suwałki) 지방은 프로이센이 가져감.
인구 대부분은 폴란드인이었고 유대인이나 독일인이나 리투아니아인도  있었음

크라쿠프(Kraków), 루블린(Lublin) 오스트리아가 가져감.
인구 대부분은 폴란드인이었고 유대인이나 독일인도  있었음.

리투아니아라트비아 남부크레시(동슬라브족 영역서부는 러시아가 가져감.

리투아니아는 리투아니아인과 폴란드인과 유대인이 대다수였음.
라트비아 남부는 라트비아인이 대다수였음.
크레시 서부는 동슬라브족이 대다수였음.

이로써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은 지도상에서 사라짐.

앞으로 123년간은 폴란드-러시아 관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음나라가 사라졌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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